OSMT

[쥬시른] 님아 그 꽃을 그리지 마오

작은누이 2018. 3. 25. 17:53

※ 1기 9화 이후의 이야기
※ 이치마츠 시점의 독백이 주를 이룹니다.

 

 

쥬시마츠는 꽃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우린 그 애에게 그림의 재능이 있다는걸 그때 처음 알았죠.

 

활짝 핀 꽃. 진 꽃. 큰 꽃. 작은 꽃.
꽃은 항상 다 노란색이었어요. 부드러운 흙을 뚫고 나와 싹 틔우는 사랑스러운 색.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죠. 아니 우리 모두가 눈치챘을 거에요. 그 꽃을 누구를 위해 그리는지.

 

그 사랑스러운 고백을 쥬시마츠는 매일 매일 그려나갔어요.

 

어느 날 모두가 외출한 뒤에 다락방에 올라가 그 애의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는 참을 수 없는 질투를 느꼈어요.

 

그래. 질투요.

 

 

드르륵,

 

" ...대체 누가 "
" ..는.. 니다. "

 

" 무슨 일이야? "
" 이치마츠 형. 쥬시마츠 형 그림이 찢어져 있었어. "
" 꽃 그림? "
" 애초에, 그거 그냥 쥬시마츠가 찢은 거 아니야? 우리가 찢을 이유가 없다고. 그렇지. 이치마츠? "
" 응. "

 

나는 오소마츠 형의 질문에 대답했어요. 그건 사실이에요. 내가 쥬시마츠의 그림을 찢을 수 있을 리가.
마지막으로 돌아온 쥬시마츠는 물끄러미 찢어진 그림만 쳐다봤어요.

 

" 하핫. 고양이가 들어와서 찢어버렸나 봐! "

 

 

우리는 범인을 찾지 않았어요.
왜 인지는 모르겠어요. 그저 바로 그날 다시 새로운 종이를 꺼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쥬시마츠를 보고 다들 질린 걸지도.

 


하지만 우리 사이에 범인은 있었어요.

 


그렇게 또 몇 날 며칠이 지났어요. 쥬시마츠의 그림이 거의 완성 될 때 쯤이었죠.

 

노란 유채 꽃이 가득한 꽃의 바다였어요.
그 날의 그 꽃은 한 줌의 까만 재가 되었어요.

 

마치 그녀 때문에 까맣게 재가 되어버린 쥬시마츠의 사랑 같았어요.

 

" 대체 누구야!! 이건 심하잖아. 저번의 그 사건도 그렇고. 혹시 쵸로마츠 형이야? 어제도 물감 냄새가 심하다고 구박했잖아! "
" 야, 토도마츠 너 말이 좀 심하다? 객관적으로 내가 그럴 이유가 어딨어? 그렇게 따지면 넌 최근에 쥬시마츠가 그림 그린다고 안 놀아준다고 투덜거렸잖아. 그럼 네가 범인이지! "
" 뭐, 뭐라고! "
" 자, 자. 진정해. 우리 중에 누가 그런지는 모르지만 쥬시마츠의 그림을 저렇게 만든 사람이 있는 건 확실한 거 같으니까. 쥬시마츠. 짐작 가는 사람 있어? "
" 아, 아니 "
" 그럼 우리 투표할까. 음. 나는 이치마츠? 역시 음침한 애들이 먼저 의심 간단 말이지. "
" 나 아니야. "
" 잠깐, 투표라니! 그렇게 의심해도 되는 거야? "

 

나는 오소마츠 형의 의중을 알 수 없었어요.

 

" 그만!! "

 

그때 쥬시마츠는 우리를 멈춰 세웠죠.

 

" 나는 괜찮아. 그림은 다시 그리면 되니까. 그리고 아마 누가 실수로 이렇게 해서. 너무 미안해서 나타나지 못하는 걸 꺼야. 나는 괜찮아. "

 

바보같은 쥬시마츠. 나는 그 말을 듣고 헛웃음을 터트렸어요.

 

" 쥬시맛츠 형!? 무슨 말도 안 되는. "
" 자자, 쥬시마츠 뜻이 그러면 우리가 따라야지. 토도마츠 너도 그만해. 어차피 내가 범인이다. 하고 나올 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괜한 의심으로 상처만 줄 수 있다고? "

 

나를 범인으로 지목한 오소마츠 형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어요.


그걸 느끼는 건 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지라 우리는 또 범인을 찾지 않았어요. 

 


쥬시마츠는 그날 그림을 그리지 않았어요. 다음 날 밤이 되어서야 그리기 시작했죠.
쥬시마츠는 꽃을 그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바라보고.

 

노란 연꽃이 완성될 때쯤. 그 그림은 삼각형. 사각형. 반듯하게 조각조각 잘려있었어요. 마치 쥬시마츠의 마음을 조각조각 내듯이.

 

우리는 지쳐버렸어요. 범인은 찾지 않았죠. 이제는 그냥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어요.

 

 

삼일 뒤에 그리기 시작한 담장 위에 소복이 쌓여 있던 노란 개나리는 새까만 물감으로 뒤덮여 버렸어요.
수십 번 수백 번. 짓뭉개든 검정색이 덮여있었죠.

 

마치 누군가의 마음을 뒤덮듯이.

 


우리는 또 범인을 찾지 않았어요.
 

 

 

쥬시마츠는 체념한 듯이 그림을 그리지 않았어요.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죠. 언제나처럼 일상이 흘러갔어요.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을 즘 쥬시마츠는 다시 꽃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이번엔 모두가 관심을 가졌죠.
쥬시마츠는 이번에 그림을 보여주지 않았어요. 그저 모두가 잠이 들 때 즈음 밤이 되면 그리기 시작했죠.

 

그래서 나는 모두가 집을 비운 날을 기다렸어요.

 

부엌에 들어가 물을 마시고.
계단을 한 칸. 두 칸. 올라갔어요. 심장은 거기에 맞춰 두근거렸죠.

 

문을 열자 물감 냄새가 진동을 했어요. 하지만 내 눈을 사로잡는 건 아름다운 노란색. 노란빛의 물결. 노란빛의 아지랑이.

 

아 !

 

활짝 핀 해바라기는 나를 향해 서 있었어요.
그 아이의 올곧은 고백처럼. 나를 쳐다보고 있었죠.

 

나는 왼손을 들어 종이의 모서리를 만졌어요. 매끈하고 뾰족한 모서리. 그리고 손을 옮겨 꽃을 쓰다듬었어요.

나는 한참을 그 꽃을 쓰다듬다가 오른손을 들었어요. 아까 부엌에서 가져온 칼이 들린 손이에요.

 

지익-
북!! 부욱!!

 

종이를 칼로 긋는 건 좀 힘이 드네요. 나는 한참을. 한참을 긋다가 숨을 골랐어요.

 

" 하아, 하아. "
" 이제 쥬시마츠는 꽃을 그리지 않을 것 같아. "

 

그렇지?

 

나는 혼잣말을 했어요.
아니. 혼잣말이 아닌가?

 

나는 등 뒤를 향해 다시 한번 말했어요.

 

" 쥬시마츠는 이제 꽃을 그리지 않을 거야. "

 

뒤를 돌아보니 네 명의 형제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죠. 그 얼굴을 보니 과연 우리는 쌍둥이구나 싶었어요.

 

첫 번째 사건 때 나는 오소마츠 형의 손끝에 살짝 노란 물이 들었다는걸 눈치챘어요.

 

두 번째 사건 때 나는 그날 아무 이유 없이 쓰레기통 가장 아래에 박혀 있던것이 쿠소마츠가 아끼는 예전에 샀던 라이터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어요.

 

세 번째 사건 때 나는 가위질이 서툰 형제 중에서 쵸로마츠 형이 가위질을 제일 잘 하는걸 알고 있었어요.

 

네 번째 사건 때 나는 토도마츠의 하얀 덧버신 아래에 묻은 검은 무언가를 보았죠.

 

그리고 다섯 번째 사건은 일어났어요.

 

범인은 부엌의 칼로 쥬시마츠의 그림을 난도질했어요. 마치 13일 금요일의 제이슨이 그날 밤 여자를 칼로 난도질하듯 너덜너덜.
마치 그녀를 향한 마음을 질투하듯이. 부정하듯이. 갈기갈기 찢어버렸어요.

 


가엾은 쥬시마츠. 이제 쥬시마츠는 꽃을 그리지 않겠죠. 그 애의 갈 곳 없는 고백만이 여기 내 발밑에 무참히 찢겨있어요.
 

 

 

하지만 괜찮아.

 

우리 남은 다섯 형제가 너를.
너를 사랑해줄게. 너의 고백을 받아 줄게.

 

네 해바라기는 잘 받았어.
다른 꽃들을 형제들이 가져간 건 조금 열받지만.

 

너를 닮은 사랑스러운 고백이야.

쥬시마츠.

쥬시마츠.

 


그러니까 더 이상의 꽃 그림은 필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