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건 싫다. 끈적거리고. 까끌까끌하고. 불쾌하고.
그리고 순수했던 무언가를 더럽히는 것들.

 

 

 

" 마츠노! 수학이 교무실로 잠깐 오래. 네 동생 일인 거 같던데. "
" 어. "

 

쵸로마츠는 그 말에 교실을 나섰다. 수학이라면 쥬시마츠의 담당 교사였다.

혹시 저번처럼 실수로 유리창이라도 긁은 건가. 왜 이런 일은 매번 자신만 부르는 거야?

 

그런 불평을 하며 간 교무실에서 본 것은 등을 웅크리고 있는 쥬시마츠의 뒷모습이었다.

 

" 선생님. "
" 아, 마츠노군. 쥬시마츠가 몸이 안 좋은 거 같은데 말도 안 하고 양호실도 가지 않겠다고 해서요. 그래서 조퇴를 시키려는데 마츠노군이 좀 데려다주겠어요? 다른 형제들은 지금 전부 바쁜 것 같아서. "
" ... "

 

쵸로마츠는 바닥만 내려다보는 쥬시마츠를 흘긋 쳐다보았다. 아, 제길. 귀찮다. 하지만 교사의 말을 거절하는 건 좋은 평가를 주지 못 한다.

 

" 네. "

 

 

" 쥬시마츠. 교실에서 가방가지고 내려갈 테니까 교문에 서 있어. "
" 응... "

 

쵸로마츠는 왠지 모르게 식은땀을 흘리는 쥬시마츠를 보고 혀를 찼다.

 

츳. 정말 아픈 건가.

 

아무렇지 않게 쥬시마츠의 교실로 들어가 가방을 들고나오자 시선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이런 시선이 싫은 거다.

 

" 마츠노군. 뭐야? 몇 번째 마츠노지? 쥬시마츠 조퇴하는 거야? "
" 어. "

 

킥, 킥킥

 

왠지 모를 웃을 들을 뒤로한 채 짧게 대답하고 교실을 나가 교문을 가자 웅크리고 있는 쥬시마츠가 보였다.

 

" 뭐야, 쥬시마츠. 많이 안 좋은 거야? "
" 아, 아니. 집에 가, 가. "
" 그래. "

 

점심이 지난 2시는 해가 절정이라 눈이 부셨다. 살짝 몸을 구부린 채 배를 감싸고 걷는 쥬시마츠를 힐긋 보고 쵸로마츠는 한참을 말없이 걸었다. 애초에 쥬시마츠랑 그렇게 친한 것도 아니고.

 

쥬시마츠는 집에 다다를수록 안색이 창백해졌다. 집이 보일 때쯤은 걸음을 빨리 걷는 바람에 자신도 절로 걸음이 빨라졌다.

 

" 어이, 쥬시마츠. 천천히 가라고! 뭐야, 갑자기 배탈이라도 난 거야? "
" 화, 화장실. "

 

거의 뛰기 직전의 걸음으로 집에 들어가자 아무도 없는 정적 속에 쥬시마츠의 신발 벗는 소리만 들렸다. 어찌나 급한지 잘 벗겨지지 않는 신발은 덜그럭덜그럭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 쥬시마츠, 천천히... "
" 화, 화장실!! "

 

쥬시마츠는 정말로 화장실이 급해 보였다. 신발을 가지런히 벗지 않았다고 잔소리를 하려던 쵸로마츠는 쥬시마츠가 볼일을 끝내면 말하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발을 벗고 복도로 뛰어가려던 쥬시마츠는 갑자기 주저앉고 말았다.

 

" 쥬시마츠, 괜찮... "
" 아, 안 돼... 아..! "

 

쥬시마츠의 바지가 짙은 색으로 젖더니 이내 노란색 물이 복도를 적셨다. 그리고 풍기는 지린내가 쥬시마츠가 실금을 해버린 걸 증명해줬다.

쵸로마츠는 너무나도 당황하여 신발도 벗지 못하고 굳어버렸다. 그도 그럴 게 그렇지 않은가. 그렇게 어른은 아니지만 어린 나이도 아닌. 16살이나 먹은 남자가 소변을 지리다니.

 

" 흐... 훌쩍. 흐, 흐윽... "

 

주저앉은 동생의 어깨가 떨리기 시작했다. 울보인 쥬시마츠로선 당연한 일이었다.

 

울고 싶은 건 자신이다. 이 더운 날 다시 학교로 가는 것도 귀찮은데 이젠 소변까지 치워야 한다.

 

" 쥬시마츠. 이게 무슨. 네가 어린애야? 소변이 급하면 학교 화장실을 갔어야지. "

" 하, 지만... 못 가게 해, 했는걸. "
" ? "
" 가, 가지 말, 라고. 가면 벌, 히끅 준다고. 히힉... "
" ... "


즉 쥬시마츠의 말은 누군가 화장실을 못 가게 괴롭혔다는 거다.


하, 다들 나이를 어디로 쳐먹은 건지.

 

교실을 나설 때 들려왔던 웃음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귓가를 긁는 듯한 불쾌한 웃음소리.
고작 그따위 협박에 화장실을 못 가서 이렇게 복도에 지려버린 동생의 모습도 짜증 났다.

 


" 혀, 혀엉... "

 

멈칫,

짜증스럽게 신발을 벗고 쥬시마츠에게 다가가던 쵸로마츠는 등을 보인 채로 주저앉은 쥬시마츠가 고개를 돌려자신을 바라보자 걸음을 멈췄다.

 

" 쵸, 훌쩍 로마츠 혀엉... 다, 른 형이랑 토도마츠, 한테 비밀로 해줘.. 혀엉. 흐,윽 훌쩍. "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과 달아오른 눈가. 울상인 표정의 동생. 그리고 소변의 온기 때문에 축축하고 후덥해진 복도가 느껴졌다.

 

 

" 아, 아- 제길. "


그 때 나는 이상한 성벽이 생길 것임을 예상했다.
정말 엿 같은 일이지.

 

유명한 동영상 사이트에 어느 날 올라온 영상 하나가 큰 인기를 끌었다.

 

단순히 한 남자가 나와서 주저리주저리 혼잣말 하는 짧은 영상은 어째서인지 순위권에 올라앉아 많은 조회 수와 댓글을 차지했다.

 

대체 무슨 영상이길래?

 

나는 일주일이 지나도 순위권에 올라와 내 시야를 어지럽히던 그 영상을 기어이 클릭하고야 말았다.
그래 그렇게 내 신경이 쓰이게 하더니 어떤 영상인지나 보자. 얼씨구? 광고까지 넣어 놨네.

 

무려 15초짜리 광고를 기다리며 나는 화면을 내려 수많은 댓글을 보았다.

 

힘내세요! 이루어질 거에요!
당신은 너무 사랑스러워요!

 

너를 향한 수많은 응원 글과 고백 글이었다.

 

흥. 역시 얼굴만 믿고 지껄이는 시답잖은 영상인가?
그렇게 이유 모를 질투에 빈정거리며 계속 글을 읽고 있을 때였다.

 

달각- 달각-

 

' 이렇게 하는 건가? '

 

그 때 처음 너의 목소리를 들었다.

 

' 어, 으음. 안녕하세요. 저는 쥬시마츠에요. '

 

그때 처음 너의 이름을 들었다.


쑥스러운 듯. 부끄러운 듯. 볼을 붉힌 너의 얼굴을 보았다.

 

' 저, 그러니까. 처음 본 건 말이에요... '

 

고개를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너는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스피커의 소리를 키웠다.

 

주저리주저리 횡설수설. 사실 네가 뭐라고 하는지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너는 때때로 소리가 너무 작았고. 빨라졌다 느려졌다. 울먹이다. 웃다.
마치 어떠한 죄책감을 가진 사람이 교회에서 고해성사하는 듯했다.

 

하지만 전해져 오는 것은 있었다. 따듯함.
사내자식이... 그렇게 이상한 감정을 느끼며 나는 동영상이 끝나감을 느꼈다.

 

이상한 기분이다. 설렘? 아니 마치 불쾌감과 같았다. 술렁술렁 뱃속에서부터 요동치는 파도같이 가슴을 옥죄이는.

 

' 하지만 말이죠, '
" ...? "

 

내내 카메라 시선을 묘하게 피하던 넌 어느샌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마치 내 눈앞에 네가 앉아 내 눈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 ... 당신이 정말 좋아요. '

 

진심이에요.

 

" ...! "

 

나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바보같이 그가 정말로 앞에 있는 것도 아닌데!
고개를 숙이자 키보드가 보였다. 그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올렸다.

 

후끈후끈. 열이 오르는 것 같아. 심장이 빨리 뛰어 머리가 어지러워.

 

하지만 내 눈앞에 보이는 건 검정색 화면.

 


영상은 끝나있었다.


" 하, 하하. "

 

그제야 완전히 이해했다. 이건 사랑의 고백이구나. 그렇구나.

 

하지만 당신은. 너는. 그에게 직접 이것을 이야기 해야 했다. 이렇게 영상으로 모두에게 고백하지 말았어야 했다.
너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그 사람만이 알 수 있도록. 너는 그랬어야 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 안녕. 쥬시마츠. "
" 에... 그러니까. 당신은 누구? "
" 네 팬이야. "

 

 


네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

 

글을 쓰다 보니 저는 고백에 관련된 걸 좋아하는 듯합니다...

사실 이거 이치쥬시로 제이슨 이치 관점으로 쓰려고 했는데 그냥 모브로 ㅠ

이 모브는 스톸커가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히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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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엑 따가! "

" 쥬시마츠, 괜ㅊ.. "

" 쥬시마츠!! 마이 스위티 괜찮은가!? "

" ... "

" 아 진짜 밥 먹을 때만큼은 그런 발언 자제할 수 없어? "

 

쥬시마츠와 카라마츠가 사귀기 시작했다.
물론 그 과정에 좀 마찰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결국, 이런 광경이 완성되는거다.

 

쥬시마츠가 그녀를 보냈을 때 울던 모습이 떠올랐다.

 

" 칫. "

 

다시는 사랑 따위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바보 아니야? 형제라고. 결국 끝이 좋지 않을 건 당연하잖아?

 

" 헤헷. 형아 고마워. "
" 훗- "

 

 

근데 어째서 그렇게 웃는 거야. 너는.

 

 

 

" 흥얼 흥얼. 응? 이치마츠? 거기서 뭐 하는 건가. "
" ... 카라마츠. "
" 오오. 무슨 일이지 브라더. 고민이 있는 건가? "

 

오래간만에 불린 자신의 이름에 흥분한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물었다.

말할까. 아니 후회할 거야. 하지 말자.

 

" 카라마츠 형. 쥬시마츠랑 헤어지면 안 돼? "

 

하지만 의지를 배반하고 비집어 나오는 건 추한 질투. 진흙보다 질척거리고 그 어떤 오물보다도 더러운.

 

" 이치마츠. 미안하다. 나는 쥬시마츠를 사랑하니까. 그렇다고 너나 다른 형제들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걱정 마라 Non, Non! "

 

끝은 장난스러웠지만 진지한 카라마츠의 대답에 결국 후회했다. 제길 괜히 말했어. 뻔한 결과잖아.

 

퍽!!

 

" 멍청아. 오늘은 만우절이야. "
" 으앗, 이. 이치마츠 아프지 않은가!! "

 

만우절! 에이프릴 풀! 역시 브라더는 우리를 이해해 주고 있는 줄 알고 있었다Ze!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정강이를 차고 뒤를 돌아 집으로 향해 걸어갔다. 뒤에서 들려오는 멍청한 소리에 실소가 나왔다.
망할 쿠소마츠. 바보 같은 쥬시마츠. 끼리끼리 잘도 만났네. 주변에 알게되면 사회적으로 매장이라고. 멍청하긴!

 

빨리 헤어져. 그게 정상이라고. 아주 환상의 바퀴벌레 한쌍이구만?

 

... 쿠소마츠 자식 쥬시마츠를 울리면 죽여버리겠어. 당장 데려와 버릴 테다.

 

 

 

그러니까. 그때까지 내 사랑은 묻어두자.

 

 

 

---

 

만우절 뒷북


※ 1기 9화 이후의 이야기
※ 이치마츠 시점의 독백이 주를 이룹니다.

 

 

쥬시마츠는 꽃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우린 그 애에게 그림의 재능이 있다는걸 그때 처음 알았죠.

 

활짝 핀 꽃. 진 꽃. 큰 꽃. 작은 꽃.
꽃은 항상 다 노란색이었어요. 부드러운 흙을 뚫고 나와 싹 틔우는 사랑스러운 색.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죠. 아니 우리 모두가 눈치챘을 거에요. 그 꽃을 누구를 위해 그리는지.

 

그 사랑스러운 고백을 쥬시마츠는 매일 매일 그려나갔어요.

 

어느 날 모두가 외출한 뒤에 다락방에 올라가 그 애의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는 참을 수 없는 질투를 느꼈어요.

 

그래. 질투요.

 

 

드르륵,

 

" ...대체 누가 "
" ..는.. 니다. "

 

" 무슨 일이야? "
" 이치마츠 형. 쥬시마츠 형 그림이 찢어져 있었어. "
" 꽃 그림? "
" 애초에, 그거 그냥 쥬시마츠가 찢은 거 아니야? 우리가 찢을 이유가 없다고. 그렇지. 이치마츠? "
" 응. "

 

나는 오소마츠 형의 질문에 대답했어요. 그건 사실이에요. 내가 쥬시마츠의 그림을 찢을 수 있을 리가.
마지막으로 돌아온 쥬시마츠는 물끄러미 찢어진 그림만 쳐다봤어요.

 

" 하핫. 고양이가 들어와서 찢어버렸나 봐! "

 

 

우리는 범인을 찾지 않았어요.
왜 인지는 모르겠어요. 그저 바로 그날 다시 새로운 종이를 꺼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쥬시마츠를 보고 다들 질린 걸지도.

 


하지만 우리 사이에 범인은 있었어요.

 


그렇게 또 몇 날 며칠이 지났어요. 쥬시마츠의 그림이 거의 완성 될 때 쯤이었죠.

 

노란 유채 꽃이 가득한 꽃의 바다였어요.
그 날의 그 꽃은 한 줌의 까만 재가 되었어요.

 

마치 그녀 때문에 까맣게 재가 되어버린 쥬시마츠의 사랑 같았어요.

 

" 대체 누구야!! 이건 심하잖아. 저번의 그 사건도 그렇고. 혹시 쵸로마츠 형이야? 어제도 물감 냄새가 심하다고 구박했잖아! "
" 야, 토도마츠 너 말이 좀 심하다? 객관적으로 내가 그럴 이유가 어딨어? 그렇게 따지면 넌 최근에 쥬시마츠가 그림 그린다고 안 놀아준다고 투덜거렸잖아. 그럼 네가 범인이지! "
" 뭐, 뭐라고! "
" 자, 자. 진정해. 우리 중에 누가 그런지는 모르지만 쥬시마츠의 그림을 저렇게 만든 사람이 있는 건 확실한 거 같으니까. 쥬시마츠. 짐작 가는 사람 있어? "
" 아, 아니 "
" 그럼 우리 투표할까. 음. 나는 이치마츠? 역시 음침한 애들이 먼저 의심 간단 말이지. "
" 나 아니야. "
" 잠깐, 투표라니! 그렇게 의심해도 되는 거야? "

 

나는 오소마츠 형의 의중을 알 수 없었어요.

 

" 그만!! "

 

그때 쥬시마츠는 우리를 멈춰 세웠죠.

 

" 나는 괜찮아. 그림은 다시 그리면 되니까. 그리고 아마 누가 실수로 이렇게 해서. 너무 미안해서 나타나지 못하는 걸 꺼야. 나는 괜찮아. "

 

바보같은 쥬시마츠. 나는 그 말을 듣고 헛웃음을 터트렸어요.

 

" 쥬시맛츠 형!? 무슨 말도 안 되는. "
" 자자, 쥬시마츠 뜻이 그러면 우리가 따라야지. 토도마츠 너도 그만해. 어차피 내가 범인이다. 하고 나올 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괜한 의심으로 상처만 줄 수 있다고? "

 

나를 범인으로 지목한 오소마츠 형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어요.


그걸 느끼는 건 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지라 우리는 또 범인을 찾지 않았어요. 

 


쥬시마츠는 그날 그림을 그리지 않았어요. 다음 날 밤이 되어서야 그리기 시작했죠.
쥬시마츠는 꽃을 그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바라보고.

 

노란 연꽃이 완성될 때쯤. 그 그림은 삼각형. 사각형. 반듯하게 조각조각 잘려있었어요. 마치 쥬시마츠의 마음을 조각조각 내듯이.

 

우리는 지쳐버렸어요. 범인은 찾지 않았죠. 이제는 그냥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어요.

 

 

삼일 뒤에 그리기 시작한 담장 위에 소복이 쌓여 있던 노란 개나리는 새까만 물감으로 뒤덮여 버렸어요.
수십 번 수백 번. 짓뭉개든 검정색이 덮여있었죠.

 

마치 누군가의 마음을 뒤덮듯이.

 


우리는 또 범인을 찾지 않았어요.
 

 

 

쥬시마츠는 체념한 듯이 그림을 그리지 않았어요.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죠. 언제나처럼 일상이 흘러갔어요.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을 즘 쥬시마츠는 다시 꽃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이번엔 모두가 관심을 가졌죠.
쥬시마츠는 이번에 그림을 보여주지 않았어요. 그저 모두가 잠이 들 때 즈음 밤이 되면 그리기 시작했죠.

 

그래서 나는 모두가 집을 비운 날을 기다렸어요.

 

부엌에 들어가 물을 마시고.
계단을 한 칸. 두 칸. 올라갔어요. 심장은 거기에 맞춰 두근거렸죠.

 

문을 열자 물감 냄새가 진동을 했어요. 하지만 내 눈을 사로잡는 건 아름다운 노란색. 노란빛의 물결. 노란빛의 아지랑이.

 

아 !

 

활짝 핀 해바라기는 나를 향해 서 있었어요.
그 아이의 올곧은 고백처럼. 나를 쳐다보고 있었죠.

 

나는 왼손을 들어 종이의 모서리를 만졌어요. 매끈하고 뾰족한 모서리. 그리고 손을 옮겨 꽃을 쓰다듬었어요.

나는 한참을 그 꽃을 쓰다듬다가 오른손을 들었어요. 아까 부엌에서 가져온 칼이 들린 손이에요.

 

지익-
북!! 부욱!!

 

종이를 칼로 긋는 건 좀 힘이 드네요. 나는 한참을. 한참을 긋다가 숨을 골랐어요.

 

" 하아, 하아. "
" 이제 쥬시마츠는 꽃을 그리지 않을 것 같아. "

 

그렇지?

 

나는 혼잣말을 했어요.
아니. 혼잣말이 아닌가?

 

나는 등 뒤를 향해 다시 한번 말했어요.

 

" 쥬시마츠는 이제 꽃을 그리지 않을 거야. "

 

뒤를 돌아보니 네 명의 형제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죠. 그 얼굴을 보니 과연 우리는 쌍둥이구나 싶었어요.

 

첫 번째 사건 때 나는 오소마츠 형의 손끝에 살짝 노란 물이 들었다는걸 눈치챘어요.

 

두 번째 사건 때 나는 그날 아무 이유 없이 쓰레기통 가장 아래에 박혀 있던것이 쿠소마츠가 아끼는 예전에 샀던 라이터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어요.

 

세 번째 사건 때 나는 가위질이 서툰 형제 중에서 쵸로마츠 형이 가위질을 제일 잘 하는걸 알고 있었어요.

 

네 번째 사건 때 나는 토도마츠의 하얀 덧버신 아래에 묻은 검은 무언가를 보았죠.

 

그리고 다섯 번째 사건은 일어났어요.

 

범인은 부엌의 칼로 쥬시마츠의 그림을 난도질했어요. 마치 13일 금요일의 제이슨이 그날 밤 여자를 칼로 난도질하듯 너덜너덜.
마치 그녀를 향한 마음을 질투하듯이. 부정하듯이. 갈기갈기 찢어버렸어요.

 


가엾은 쥬시마츠. 이제 쥬시마츠는 꽃을 그리지 않겠죠. 그 애의 갈 곳 없는 고백만이 여기 내 발밑에 무참히 찢겨있어요.
 

 

 

하지만 괜찮아.

 

우리 남은 다섯 형제가 너를.
너를 사랑해줄게. 너의 고백을 받아 줄게.

 

네 해바라기는 잘 받았어.
다른 꽃들을 형제들이 가져간 건 조금 열받지만.

 

너를 닮은 사랑스러운 고백이야.

쥬시마츠.

쥬시마츠.

 


그러니까 더 이상의 꽃 그림은 필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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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때론 뜨겁게. 때론 차갑게. 몸을 돌고 돌아 심장으로 되돌아가는 요동치는 붉은 액체.

상처를 내면 한 방울. 두 방울씩 흘러내리지.

피? 혈액?

 

아니 이것은 사랑.

 

 

 

 

쥬시마츠가 흡혈귀가 되었다.

그 사실을 형제들에게 말하자 정적이 흘렀지만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장남 오소마츠였다. 그는 얼어붙은 분위기를 해소하고자 장난스레 말을 했다.

 

"우와, 쥬시마츠. 어떡하다가 흡혈귀가 된 거야? 확실한 거야? 아니면 새로운 컨셉? "
" 나도 잘 모르겠슴다. 그냥 밤에 길을 가다가 누가 목을 무는 거 같더니 기절해서... "

 

쥬시마츠는 며칠 전 밤에 기절해서 집에 실려 온 적이 있었다. 그때 목깃이 피로 젖어 있었는데 그땐 모두가 기절하면서 어딘가에 목이 긁혔다고 생각했다.


" 있잖아. 혹시 지금 내 피 먹고 싶어? 나도 그럼 흡혈귀가 되는 건가? 해봐! 해봐! "
" 오소마츠! 브라더는 심각할 텐데 그런 말을. "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말렸지만 오소마츠는 후드티를 내리며 쥬시마츠에게 자신의 목덜미를 내밀었다.


" 어, 음... 오소마츠 형아. 진짜 해도 돼? "
" 오소마츠형 미쳤어? 어떻게 될 줄 알고. "


쵸로마츠도 말렸지만 오소마츠는 물러섬이 없었다.

 

쥬시마츠는 너무나도 배가 고팠다. 이것은 단순한 허기가 아닌 공복. 마치 텅 빈 것과 같은. 오소마츠의 목덜미에서는 좋은 냄새가 났다. 쥬시마츠는 이 텅 빈 감각을 메우고 싶었다.


콱-! 쮸읍.


" 윽, 쥬시마츠. 아프잖아! "


오소마츠는 생각 이상의 고통에 눈을 찌푸렸다. 소설이나 만화를 보면 야릇한 기분이 느껴진다기에 궁금했던 것인데 이건 너무나도 아팠다. 연약한 목덜미를 송곳으로 쑤시는 듯한 감각이었다.


" 잠, 잠깐. 쥬시마츠! 이만하는 게 좋겠어. 횽아 진짜 아프다구! "


꿀꺽 꿀꺽 맛있게 먹는 쥬시마츠를 억지로 떼어낸 오소마츠는 손을 들어 목을 감쌌다. 으- 목덜미가 불에 지진 듯 뜨거웠다.


" 이런, 미친. 둘 다 미쳤어? 오소마츠 형도 진짜 흡혈귀가 되면 어떡하려고 그래? "
" 하하. 쵸로마츠. 재밌잖아! 하지만 꽤 아픈걸. 아니. 진짜 아파! 소설이나 만화는 다 뻥이었어. "
" 쥬, 쥬시마츠 형... "


평소 겁이 많던 토도마츠는 입에 피가 묻은 쥬시마츠를 무서워했다. 그걸 눈치챈 쥬시마츠는 소매로 입을 가렸다.


" 토, 톳티... 미, 이야안. 나 잠깐 밖에 나갔다 올게. 오소마츠 형아 미안... "


쥬시마츠는 사실 잠깐 맛본 형의 피를 더 먹고 싶어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톳티의 겁먹은 표정을 보니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이 자리를 피하기로 했다.


" 잠깐. 쥬시마츠. 같이 나가. "


계속 조용했던 이치마츠가 일어섰다.


" 이치마츠 형... 나. 혼자 잠깐 나가고 싶어. 헤헤. "


쥬시마츠는 얼른 집 밖을 나섰다. 차가운 바람이 그를 스쳤다. 집을 나서면서 자신을 낯설게 쳐다보던 형제들의 얼굴이 떠올라 드물게 그는 슬퍼졌다.
 

 

 

" 쥬시마츠. 어젯밤에 네가 나간 사이 우리끼리 회의를 했어. 네가 흡혈귀가 되긴 했지만 우린 가족이잖아! 그리고 내가 흡혈귀가 되지 않은 걸 보니
괜찮은 것 같아. 그러니 우리가 돌아가면서 피를 줄게. "


다음날 부모님이 외출한 뒤 오소마츠의 말에 나머지 형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 저, 정말임까? "
" 물론이다. 마이 리틀 쥬시마츠. 어제는 당황했지만 역시 넌 여전히 사랑스러운 동생이다. "
" 닥쳐, 쿠소마츠. "
" 아- 정말 어제도 말했지만 난 좀 빼줘. 내 몸에 구멍을 내다니. 난 싫어. 쥬시마츠 난 빼달라고. "
" 쥬, 쥬시마츠 형이 먹고 싶다면 나, 나도 괘, 괜찮... "
" 쥬시마츠. 그냥 내 피를 먹어. "

 

한 사람씩 말하는 와중에 이치마츠가 쥬시마츠를 향해 이야기했다.

 

" 토도마츠 저 새끼는 겁쟁이니까 말이야. "
" 뭐, 뭐라고 이치마츠형!! "
" 다들 고마워... 그리고 미안. 헤, 헤헤... "

 

쥬시마츠는 사실 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공복의 공포를 무시 할 수 없다. 그리고 달콤한 피의 맛도 이제는 잊을 수 없는 것이다.

 

꼬르륵,

 

어제 오소마츠의 피를 떠올리자 쥬시마츠는 배가 고파졌다. 그 소리에 토도마츠는 놀라 쵸로마츠 뒤로 숨었다. 아직은 자신을 무서워하는 톳티를 보자 쥬시마츠는 가슴이 약간 아팠다.

 

" 쥬시마츠. 지금 내 피를 마셔. 배고프잖아. "

 

이치마츠가 목을 내밀자 쥬시마츠는 거부하지 않았다. 쥬시마츠는 애써 밝게 웃었다.

 

" 응, 이치마츠 형아. "

 

콱!! 쮸읍. 꿀꺽, 꿀꺽.

 

하지만 그의 피를 두 모금 쯤 마셨을까.

 

" ... 응? "
" 왜 그래? "
" 이치마츠 형아 피 완전 맹물!!! "

 

이치마츠의 피는 아무런 맛이 나지 않았다. 마치 그냥 물을 마시는 듯한 맛.

 

" 풉. 크하하하핳 아이고 웃겨. 뭐야 맛도 있는 거야!? 아 이치마츠!! 그러게 평소에 운동하고 해야 영양가 있는 건강한 피가 나오지 크하하하 아이고 횽아 배아프다!! "

 

오소마츠의 말에 얼어붙은 이치마츠는 인상을 찌푸렸다.

 

" 쥬시마츠. 미안. 꼭 건강한 몸으로 만들게. 그동안 다른 놈들 피 먹고 있어. "
" 잠깐!! 나는 싫다고 쥬시마츠! "

 

쥬시마츠는 질색하는 쵸로마츠와 겁먹은 토도마츠를 지나쳐 남은 두 사람을 보았다. 어제 먹었던 오소마츠 형의 피는 맛있었다. 그렇다면 남은것은.

 

" 자, 쥬시마츠. 내 피를 먹어라. 훗. 나의 Heart에서 힘차게 뿜어나오는 피는 언제나 너를 향해... "
" 응! 카라마츠형. "

 

콱!

 

" 윽. 브라더. 천, 천히 먹어라. "
" 그거 꽤 아프지- 쥬시마츠. 카라마츠의 피는 어때? "

 

쥬시마츠는 대답하지 않고 계속해서 꿀꺽 꿀꺽 카라마츠의 피를 빨았다. 꿀꺽 꿀꺽 방 안에는 그의 목 넘김 소리만 울렸다.

 

" 쥬시마츠! 그만 마셔! 카라마츠 죽겠다고!! "
" ! 카, 카라마츠 형아 미안해. "
" 괜찮다. 브라더의 배를 채웠다면 흘러간 나를 떠난 피들도 행복했을 거다. 하지만 약간 어, 지럽군. "


앞으로는 이런 식으로 우리가 피를 줄 테니까.


그렇게 쥬시마츠는 흡혈귀의 삶을 시작했다.

 

 

 

겁이 많은 토도마츠 덕에 쥬시마츠의 식사는 항상 형제들의 식사가 끝나고 카라마츠와 단둘이 2층에서 이루어졌다. 처음엔 다른 형제들의 피를 돌

아가며 주기로 했지만, 니트들의 삶이란 운동이나 건강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개중에 가장 건강한 카라마츠가 주로 식사담당을 맞게 되었다.

 

" 카라마츠 형아 잘 먹겠습니다. "
" 브라더 천, 천천히 먹어라. "

 

카라마츠의 목덜미는 쥬시마츠 덕에 얼룩덜룩했다. 카라마츠는 쥬시마츠가 다가오자 다가올 고통에 눈을 질끈 감았다. 괜찮아. 고통은 순간이야. 나의 잠깐의 고통으로 동생의 배를 불릴 수 있어.

하지만 그 고통이란 것은 쉽사리 눈 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는 낚시하던 때. 노래하던 때. 산책하면서 보았던 것들을 떠올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느껴버린 것이다.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숨결. 부드러우면서도 거친 혀의 질감. 촉촉한 입술.

 

' 어라? '

 

꿀꺽, 꿀꺽.

 

카라마츠는 주먹을 쥐었다. 이것은 왠지 이상하지 않나? 아니야. 지금 쥬시마츠가 자기 목에 입을 대고 있으니 이건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그래.

 

" 푸하. 카라마츠형아 잘 먹었습니다! "
" 그. 그래. "

 

카라마츠는 그것들을 생각하다 어느 순간 끝나버린 쥬시마츠의 식사에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자신의 손길을 느끼며 입가를 붉게 물들인 동생을 보며 그는 한참이나 알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어느 날 카라마츠는 복도를 지나다가 살짝 열린 문 사이로 이치마츠와 쥬시마츠를 보았다. 쥬시마츠는 이치마츠의 목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이치마츠 형아 피 다러어-

 

카라마츠는 문틈으로 그 모습을 보았다. 쥬시마츠가 피에 관해 이야기 하는 것은 처음 들었다. 이치마츠는 쥬시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모습에 왠지.

 

드르륵-

 

" 브라더, 밥을 먹고 있었나? "
" 카라마츠 형아야! 응. 이치마츠 형이 한번 먹어보라고 했어. "
" 오 마이 브라더 괜찮은가? 그러고 보니 최근 운동을 했지. "
" 쥬시마츠 이제 내 피 마셔. 저런 쿠소마츠의 피 마시면 안 된다고. "
" 헤, 헤헤. "

 

카라마츠를 무시하고 말하는 이치마츠의 말에 쥬시마츠는 웃었다. 그것이 카라마츠는 못 내 가슴이 아팠다. 이치마츠의 말에 상처를 받아서? 아니 이건 항상 듣던 말인데. 단지. 이치마츠의 말이 쥬시마츠는 이제 자신을 원하지 않게 된다는 말로 들렸다.


그 뒤로 쥬시마츠는 종종 이치마츠의 피를 마셨다. 하지만 카라마츠의 피를 마시는 것을 그만두지는 않았다. 이치마츠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했다. 평소라면 동생의 부탁을 들어줬겠지만, 그는 모른 척했다. 왠지 모르게 그러고 싶었다.

 

쯉. 꿀꺽.

 

한참 쥬시마츠가 피를 마시고 끝났을 때였다. 쥬시마츠. 자신의 동생을 위해서라면 이런 고통쯤은 이제 가볍게 참을 수 있다. 단지.

 

" 카라마츠 형. "
" 응? 왜 그러지? 배고프면 더 마셔라 쥬시마츠. 오늘은 컨디션이 아주 좋아. "
" 난, 평생 이렇게 괴물이 되는 걸까? "
" ... "

 

카라마츠는 조용히 묻는 쥬시마츠의 질문에 순간 말문이 막혀 조용히 쥬시마츠를 끌어안았다.

 

" 하하, 카라마츠 형아! 미안! 내가 매일 피 마셔서 목이 아프지! 응. 이제 걱정 마! 이치마츠 형아가 있으니까! "

카라마츠는 그 말에 더욱더 쎄게 쥬시마츠를 끌어안았다.

" 아니 브라더. 평생 너에게 줘도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아라. "
" 헤헤 카라마츠 형아야. 고마워! 역시 형이 최고야. "


그 말에 눈물이 나는 이유는 뭘까.

 

 

 

" 헉, 헉! 읏! "

 

카라마츠는 끈적한 백탁액으로 젖은 손을 망연자실하게 쳐다보았다.

 

계기는 단순했다. 어느 날 손장난을 하다 잘 되지 않아 여러 가지를 떠올리다가 그냥. 정말 그냥 떠올랐던. 쥬시마츠가 자신에게 줬던 감각을 상상하며 사정한 적이 있었다. (쥬시마츠가 줬다기보다는 그가 일방적으로 느꼈던 것이지만) 그때의 기분이란 엄청나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어서 다음엔 이런 망측한 상상을 소위 딸감으로 쓰지 말자고 했건만 한번은 두 번이 되고 두 번은 세 번이 되었다.

 

" 똑, 똑. 에- 카라마츠- 횽아 급한데. "
" 잠, 잠깐만 기다려줘. "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의 노크소 리에 재빨리 손을 닦고 변기 물을 내렸다.

 

달칵.

 

" 미안하다. 오소마츠. "
" 아니, 흠. 그보다 말이야. "
" ? "

 

카라마츠는 빙긋 웃는 오소마츠를 불안하게 쳐다보았다. 예전부터 장남의 이런 웃음은 항상 무언가 재밌는 것을 발견했을 때였다. 물론 쌍둥이에게 좋지 않은 쪽으로.

 

" 흐음- 카라마츄. 자위했어? "
" 뭐, 뭐?! "
" 카라마츠 환기를 잘 해야지. 그래도 카라마츠가 고자가 아닌 건 횽아, 기쁘지만. "
" ... "
" 근데 가끔 네가 뭐라고 하는 소리 밖으로 들린다구. 쥬ㅅ... "
" 오, 소마츠! "

 

카라마츠는 다급하게 오소마츠의 말을 끊었다. 오소마츠가 말하는 단어를 들어버리면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기분.

 

" 횽아 라고 해야지. 자자 이제 빨리 나가. 나 진짜 싼다구. 그리고 다음부턴 환기 부탁하구- "

 

카라마츠는 등 뒤로 닫히는 문 앞에서 한참을 얼어있었다. 동생들에게 들킨 게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아니면 저 오소마츠에게 들킨게 불행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 그전에 이제 이 행동을 멈춰야 함에도 그는 다음에는 조심하자고 생각하는 자신을 눈치채지 못했다.


" 쥬시마츠 오늘은 팔을 물지 않겠는가? "
" 음, 알겠슴다! "

 

콰득-!

 

윽. 아무래도 여기도 아닌 것 같다. 카라마츠는 자신이 내민 팔에 이를 박은 쥬시마츠를 바라보았다. 흡혈의 첫 시작은 언제나 고통이었다. 아무래도 연약한 목덜미라 대책으로 팔을 생각한 건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다.

 

카라마츠는 눈을 감고 자신의 손목에 매달린 쥬시마츠를 보았다. 가느다랗고 기다란 속눈썹이 파드득. 파드득. 떨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면 쥬시마츠는 흡혈귀가 된 뒤로 모든 게 옅어졌다. 머리칼도. 피부도. 그리고 지금 나비처럼 파닥이는 속눈썹도 말이다.

 

이제 쥬시마츠는 밝은 태양 속에서 야구를 할 수 없다. 카라마츠는 동생에게 연민을 느꼈다. 쥬시마츠는 이제 전과 다르니까. 자신이 더욱더 신경 써 줘야 한다.

 

" 우, 으- "
" 음? 왜 그러지 마이 브라더. "
" 그게... 피가 너무 조금 나와. 형아 목을 물어도 돼? "
" ... 그래. "

카라마츠는 목덜미로 다가오는 쥬시마츠를 끌어안았다. 다시 느껴지는 날카로운 이의 감촉. 부드러운 입술과 혀. 그리고 동생의 숨결.
쥬시마츠의 숨결이 목에 닿자 짜릿한 소름이 돋았다.

이것은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식사하는 동생에게 발정하는 형이라니.

 

 

 

한번은 쥬시마츠에게 이런 느낌을 가진 다는 것에 죄책감이 느껴져 이치마츠에게 물어보았다.

 

" 이치마츠. "
" 뭐. "
" 저, 넌 괜찮은 거야? 쥬시마츠가 흡, 혈을... 할 때, 아프다거나... "
" 별로... 안 타는 쓰레기에서 걸어 다니는 혈액 팩이 된 것 뿐이고. 히, 히힉. 힣. "
" 아. 그. 그래. "

 

아무래도 그의 동생은 다른 부분에서 흥분하는 것 같아 도움이 되지 않았다.

 

 

 

 

--

 

2월 14일 카라쥬의 날 기념- 인데 아직 미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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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온전한 순간은 이제 나의 것이 아니다.

 

 

 

" 좀 꺼져!! "
" 이, 이치마츠! 내가 잘못했다! 후우. 또 화나게 하고 만 것인가. "

 

아침 댓바람부터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에게 욕을 듣고 우울해져 있었다. 최근 들어 이치마츠에게 욕을 많이 듣는 이유는 그가 이치마츠에게 최근에 많이 추근덕 대기 때문이리라.

 

" 하잇. 카라마츠 형 나랑 노래할까? "

 

쥬시마츠가 카라마츠에게 외출을 권유했지만 이미 거울의 자신에게 빠진 카라마츠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 빈번한 일이다. 카라마츠가 쥬시마츠의 말을 듣지 못하는 일은. 카라마츠는 최근에 이치마츠에게만 관심이 쏠려있었다. 쥬시마츠는 카라마츠의 무반응에 올린 손을 내리고 방 밖을 나섰다.

 

" 그럼 나 야구 하고 오겠습니다. 맛스루! "
" 쥬-시마츄. 횽아 좀 있다 빠칭코 갈껀데 그때 같이 갈래? "
" 아니- 괜찮슴다-! "
" 아고, 까였네- "

 

쥬시마츠는 지치지 않는 걸까. 쥬시마츠는 토도마츠와 노는 것과 이치마츠 외에 형제 중 카라마츠를 다음으로 좋아했다. 항상 야구나 산책을 권유하는 그런 쥬시마츠의 모습에 이치마츠는 기분이 상해 더욱더 매몰차게 구는 것도 있었다.

 

정말 언제까지고 똑같은 하루였다.

 

그런 나날들은 몇 번이고 몇십번이고 반복되었다.

 

" 하아, 왜 이치마츠는 항상 날 거부하는 걸까? 언제쯤 브라더가 내 진심을 알아줄지. "
" 푸흐흐. 그게 아니잖아. 카라마츠. "
" 무슨 말이지. 브라더? "

 

나는 그동안 하지 않았던, 카라마츠 자신조차도 눈치채지 못 했던 진실을 알려주었다.
이것은 한 번의 기회. 그리고 약간의 동정.

 

" 그게 아니잖아. 네가 이치마츠에게 그렇게 매달리는 이유 말이야. "
" 나는 이치마츠가 내 진심을 알아줬으면 해서, "
" 형제 중에- "
" ...? "
" 유독. 유일하게. 네게 까칠한 이치마츠를 따르게 만들면 그 이상으로 너를 충족시키는 게 있을까? 아니지. 이렇게 거부 당하고 심한 말을 들으면서도 동생을 아끼는 나! 뭐. 그런거지. 사실 이치마츠한테 관심 한 톨조차 없으면서. "
" ... " 
" 근데 카라마츠. 너. 너무 주변을 안 돌아보면 언젠가는 잃어버리고 만다고? "
" 무엇을? "
" 그건, 비-밀. 카라마츠. 내 입장에서 넌 변할 필요 없어. 내게 기회를 줬다고! 횽아 진심으로 네게 고마워. 이런 기회는 흔치 않아서. 나는 조금 들 뜰 지경이야. 그렇지만 이렇게 말하는 건 마지막 기회야. 형으로서의 자비? 실수하지 말라고. "
" ... "

 

그러나 카라마츠는 최후의 순간까지 눈치채지 못 할 것이다.

 

" 쥬시마츠. 같이 메이크 뮤직 하지 않겠는가? "
" 아니! 오늘은 오소마츠 형아랑 낮잠! "

 

 

드르륵-

 

" 쥬시마ㅊ.. "
" 오소마츠 형아!! 이거! 이거 봐! 도토리! "

 

 

" 형아-! 같이 야큐 갈까!? "
" Oh, 브라더. 오늘은 같이... "
" 보웨엑 카라마츠 형이 아니야! 오소마츠 형아! "
" 아, 뭐 그래 볼까? "
" 어제 연습 한 스윙을 보여주겠습니다 맛스루!! "
" 이야- 대단한걸. 조금만 하다가 빠칭코 가자? "
" 아이아이! "

 

오소마츠는 흥분한 쥬시마츠에게 어깨동무를 한 채 뒤를 살짝 돌아보았다. 아. 이제서야 그의 형제는 눈치를 챈 것 같았다.
카라마츠가 언제까지고 찾아다니던 그런 반짝이는 존재.

 

 

쿵, 쿵. 드르륵!

 

" 오소마츠! 전에 이야기 한 거 대체 무슨 뜻, "
" 쉬잇- "
" ... "
" 쥬시마츠 아까부터 자고 있어. "

 

은은한 햇살이 들어오는 방안
부유하는 반짝이는 먼지. 굴러다니는 도토리.
작은 숨소리.

 

따듯한 온기가 가득 찬.

 

그가 원하던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 방안에 가득 차 있었다.

 

카라마츠는 조용히 문을 닫고 들어가 소파에 앉았다. 바닥을 보다. 오소마츠를 보다. 다시 또 바닥을 보다. 그리고 다시 오소마츠의 무릎을 베고 자고 있는 쥬시마츠를 보았다.

 

그는 이내 소파에 기대 천장을 바라보았다.

 

따듯한 온기에 눈 앞이 뜨겁게 달아올라 그는 팔을 들어 눈을 가렸다.

 

아, 아아.

 

 

 


한번은 내가 지붕으로 올라갔는데 말이야.
아, 그런 거 있잖아. 혹시 옆집의 귀-여운 여자애의 속옷이라도 날라와 있지 않을까 하는 데헷.

그때. 넌 노래하고 있었어. 쥬시마츠랑 말이지.

그때 말이야. 하늘은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았고. 햇살은 너무 내리쬐지도 않았어. 따뜻했지. 불어오는 바람은 살랑살랑-

그리고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너의 기타소리와 그 애의 노랫소리.

 

아! 그 완전한 순간!

 

너희들은 내가 온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어. 한참이나!

그런 순간은 나에게 오지 않을 줄 알았어. 아, 너도 이걸 느꼈던 건가. 지금 이 순간이 지금의 나에게는 너무 당연하게 느껴져.


그러니까 말이야야. 울지마! 카라마츠! 응? 이건 그냥 아무것도 아니야.
어쩌면 우리의 남은 형제 중의 하나가 네가 찾던 존재가 되어줄지도 몰라.


그러니까. 이제 좀 나가줄래?

 

 

 

 

---

 

개인적으로 오소마츠는 노력하기보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날름 주워먹는 타입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운도 있고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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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것은 슬픔인가? 환희인가!
어쩌면 그 거울은 진실로 진실의 거울이었을지 모른다.



" 이 보게 거기 지나가는 총각. "
" 이 거울은 진실의 거울이야. 당신이 궁금한 걸 알려준다네. "
" 에엑? 정말임까! "
" 그럼. 그렇고 말고. 궁금하면 거울에게 한번 물어봐도 돼. "
" 헤에- 쥬시마츠는 뭘까!? 히에엑 내가 보여!! 나는 나였던 검까? "
" 고럼 고럼. 그 거울은 뭐든지 알려주지. 총각은 아직 궁금한 게 많은 것 같고. 그 거울은 총각한테 더 보여주고 싶은 게 있는 거 같아. "

어때 그 거울의 주인이 되지 않겠나?

노파의 눈은 그 나이에 맞지 않게 총명하게 빛났고, 이것이 바로 쥬시마츠가 한 달 용돈을 쓰고 온 계기였다.

" 뭐어!? 이 거울이 xx엔이라고!!? 누구야 그 할망구!! 내가 가서 따지겠어!! "
" 진정해 토도마츠. 이건 그냥 쥬시마츠가 호갱인 거라고. 지금 가도 없을거야. 그리고 자 봐봐. 쥬시마츠가 종일 저 거울을 보고 있잖아. 이미 그 할망, 아니 할머니 말을 백 퍼센트 믿고 있는 모습이잖아? "
" 쵸로마츠 말 대로네. 진짜 쥬시마츠가 카라마츄처럼 거울만 보고 있어. "
" 으득- 쿠소마츠한테 물들었어. "
" 오~!! 마이 브라더! 혹시 그 거울에 가장 멋있는 형제를 물어보면 답을 알려주는 것인가? 그럼 나도 한 번 써보고 싶다제! "

모두가 자신을 둘러싸고 웅성 거림에도 쥬시마츠는 가만히 거울만 보았다. 무엇에 빠지면 주위를 돌아보지 않는 쥬시마츠의 성정을 아는 모두는 이것 또한 잠깐의 변덕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내 돈을 쓴 것도 아니고. 라는 생각이 한 몫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쥬시마츠는 밖에 나가지 않고 종일 거울만 보았다. 말을 걸어도 잠깐 반응하거나 무시 하기 일쑤였다.
마치 카라마츠 처럼.

물론 오소마츠 처럼 잠깐의 흥미를 느꼈다가 무관심해 하거나, 쥬시마츠가 집에서 얌전에 해 진것에 대해 만족하는 쵸로마츠가 있는가 하면
걱정하는 이도 있었다.

" 쥬시마츠, 뭐해? "
" ... 어? 내 얼굴 보고 있어! "
" ... 뭐야 그게. 쿠소마츠 같은 쿠소짓 하지 말고 같이 고양이 보러 가자. 아니면 같이 야구할래? "

며칠이나 계속되는 쥬시마츠의 행동에 결국 먼저 손을 쓴 건 이치마츠였다. 카라마츠와 같은 행동을 하는 꼴을 보자니 속이 터져 야구제안을 먼저했다. 드디어 오늘은 외출하겠군. 야구 한 번이면 이제 저 짓도 흥미가 떨어지겠지.

하지만 돌아온 것은 의외의 답변.

" 음, 아니. 혼자 가!! "
" 어? 어... "

예상치 못한 대답에 이치마츠는 당황하여 결국 계획에 없던 혼자만의 외출을 했다. 힐긋 본 쥬시마츠는 역시나 거울만 볼 뿐. 약간의 서운함. 사실 쥬시마츠가 거울을 보며 하는 일은 없었다. 가끔 때때로 웃거나 얼굴을 찡그리거나 하는 모습만 보이는데 대체 뭘 그리 보는 건지.

너 때문에 쥬시마츠가 물들었다고 카라마츠의 멱살을 붙잡고 탈탈 털고 싶을 정도였다.

" 대체 뭘 보고 있어? "

어느 날은 쵸로마츠가 질문했다. 그에 쥬시마츠는 거울에서 시선을 떼고.

" 형을 보고 있어. "
" 아니, 지금 말고 거울에 뭐가 있냐고. "
" 그러니까, 형을 보고 있었어!! "
" 무슨 개소리야. 너만 보고 있었으면서. "
" 응, 맞아!! "
" 아 진짜!!! 똥꼬털 태워버린다!! 언제까지 그 짓 하고 있을 거야! "

하지만 이내 거울을 보는 쥬시마츠 때문에 쵸로마츠는 제풀에 지쳐 포기했다. 형제 중에서 쥬시마츠만큼 회유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을까 하는 평을 가진 쥬시마츠다.

이미 오소마츠. 이치마츠. 토도마츠가 도전했다가 실패했으며. 조금 전 쵸로마츠도 실패했다.

한번 거울의 세계에, 자신의 세계에 빠진 쥬시마츠를 건져 올리기란 마치 얇은 종이로 금붕어를 떠올리는 것과 같아서 대부분 놓치고 다시 물속에 빠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 카라마츠 형! 이제 쥬시마츠 좀 말려보라고!! 벌써 한 달 째야. 정상이 아니라고. 형이랑 똑같은 행동을 하다니 제정신이 아니라고 미쳤어! 안 그래도 정상이 아닌 애가 완전히 형처럼 되어선. "
" 에, bro- 그 말은 무슨 뜻... "
" 그 할망구가 무슨 사연 있는 거울이라도 줘서 쥬시마츠 형 홀린 거 아니야?! 에, 그럼 귀, 귀신?! 히이익. 에, 엑소시스트라도! "
" 토도마츠~으. 진정해 그럴 리가 없쟌? 사실 쥬시마츠가 없을 때 나도 한 번 써봤는데 그냥 평범한 거울이었다고. 어, 그럼 더 문제 있나? 헤- "

결국 참다못한 쵸로마츠의 폭발로 형제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단지 조용한 건 카라마츠와 이치마츠 뿐이었는데 카라마츠는 대체 뭐가 문제인지 몰라서였고 이치마츠는 생각에 잠겨있었다.

" 진짜 이쯤 되면 나중에 카라마츠 형처ㄹ... "
" 쥬시마츠. "

그리고 구석에서 일어나 쥬시마츠에게 말을 걸자 모두가 조용해졌다. 모두가 이치마츠를 쳐다보고 그 분위기에 이윽고 쥬시마츠도 쳐다보았다. 무시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 왜에? 이치마츠 형. 헤에. "
" 이제. 거울 그만 봐. "

진지한 이치마츠의 말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어차피 무시당하지 않을까?

" 형은 내가 거울을 보는 게 싫어? "
" 그래. 너답지 않아. 난 같이 야, 야구도 하, 하고 싶고. "

말을 하면서 얼굴이 빨개지는 이치마츠의 모습을 보던 쥬시마츠는 드디어 거울을 손에서 놓았다.

" 에에. 그렇슴까? 그렇게 야구가 하고 싶었다니! "
" 그래 bro- 사실 너는 햇살아래에서 샤이니 한 모습이 더 어울린다제. 거울과 어울리는 남자는 오레! 카라마츠 뿐. "

카라마츠의 헛소리에 쥬시마츠가 시선을 돌린 사이 거울을 치워버린 이치마츠는 쥬시마츠가 다시 눈치채기 전에 손을 이끌었다.

" 자, 가자. "
" 예엣. 알겠슴다 맛스루!! "

그 날 쥬시마츠는 거울을 보지 않았다. 야구를 하고 온 쥬시마츠는 정말 종일 야구 이야기를 해대서 다들 드디어 관심사가 돌아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래 저게 쥬시마츠지.

그렇게 모두가 수긍하고 다음 날 모두가 외출했다. 정정. 기타 줄을 사고 온 카라마츠와 일찍 돌아온 쥬시마츠만이 집에 있게 되었다.

기타를 정돈하고 거실에 내려온 카라마츠는 자신의 거울을 들고 있는 쥬시마츠의 뒤통수를 보았다. 이치마츠가 치워버린 거울을 찾지 못한 거겠지.

쥬시마츠의 그 간의 행동을 기억하고 옆에 앉은 카라마츠는 턱에 손을 괴고 물끄러미 쥬시마츠를 보았다.

쥬시마츠는 그냥 넋 놓으며 거울을 보는 게 아니었나?
쥬시마츠는 무표정했다가. 화를 냈다가. 언짢아했다가. 웃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이 다채로워 한참을 그 얼굴을 보다가

" 하하. 쥬시마츠 내 거울이 마음에 드나? 아니면 뭘 물어보고 있나? "

" 카라마츠 형. "
" 어, 어? "

거울을 보면 주변에 관심을 가지지 않던 쥬시마츠가 말을 걸자 그는 순간 말을 더듬고 말았다. 그냥 지나가는 듯한 혼잣말이었는데.

" 거울을 보면 웃고 있는 내가 있어. "

" 그, 그래 그렇지. "

거울은 뭐든지 반사해서 보여주니까... 그러나 카라마츠는 말을 삼켰다. 드물게 진지한 쥬시마츠의 모습에 왠지 모를 긴장감이 돌았다.

" 근데 입을 다물면 꼭 오소마츠형 같고. "
" 이러엏게 눈썹을 모으면 카라마츠형 같고. "
" 입을 이렇게 하면 쵸로마츠형 같고. "
" 눈을 반만 뜨면 이치마츠형 같고. "
" 입을 이렇게 귀엽게 하면 토도마츠가 있는 것 같아. "

" 근데 그건. "

" 오소마츠형 같은 나고. "
" 카라마츠형 같은 나고. "
" 쵸로마츠형 같은 나고. "
" 이치마츠형 같은 나고. "
" 토도마츠 같은 나야. "

" 결국, 거울은 나밖에 볼 수 없었어. "

쥬시마츠는 숨이 찬지 잠시 말을 멈추었다.

" 그게 왠지 나는 슬퍼서... "


형. 왜 거울을 보며 항상 슬퍼하고 있었어?




" 그러니까... 이딴 것으론... "
" 쥬시마츠 뭘 하는.. !! "

휙, 쨍그랑!!

" !! "

쥬시마츠는 거울을 바닥에 내리쳐 순식간에 산산조각 내버렸다. 여러 파편이 튀어 자칫하면 위험할 수 있다. 그러니 얼른 치워야하는데... 어째서인지 카라마츠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저 일어선 쥬시마츠를 멍청히 쳐다보기만 할 뿐.

" 이런 것은 우리가. 내가 될 수 없어. 카라마츠 형. "


있잖아. 우리. 같이 노래 부르지 않을래?


아! 그때 나의 감정은 슬픔인가? 환희인가!
어쩌면 그 거울은 진실로 진실의 거울이었을지 모른다.

이 아이가 궁금해 했던 진실은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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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쥬시마츠. 너 머리 많이 길었어. 잘라. "
" 에? 어, 으응. "

 

쥬시마츠는 자신의 뒷 목을 스치는 쵸로마츠의 손가락에 솜털이 오소소 곤두섰다. 쵸로마츠의 가늘고 기다란 손가락이 뒷목을 스윽 하고 지나가자 몸 한구석이 찌릿했다. 몇달 전부터 이런 미묘한 접촉이 잦아졌지만 기분 탓으로 넘길 만큼 짧은 접촉이어서 쥬시마츠는 이 순간이 항상 어색했다.

 

" 귓가에도 많이 내려왔잖아. "

 

그러면서 이번에는 귀를 쓰다듬는 쵸로마츠의 손길에 쥬시마츠는 손을 꽉 쥐었다.

 

" 엣. 그렇슴까? 쵸로마츠 형아는 아, 안 잘라도 돼? "

 

태연하게 대답을 하려던 쥬시마츠는 끝에 말을 더듬고 말았다. 그런 자신의 실수에 쵸로마츠는 쥬시마츠를 물끄러미 보다가 손에 들고있던 책에 시선

을 내렸다.

 

" 어. 나는 자주 잘라. 너도 좀 자주 잘라. 머리에 바보 털도 없애버리고. "
" ... "

 

쥬시마츠는 쵸로마츠의 옆모습을 보다가 내려앉는 어색함에 굴러다니는 짐볼 위로 올라가 배를 붙인 채 놀았다.
하지만 이내 쥬시마츠는 그 선택을 후회했다. 짧은 바지위로 드러난 허벅지가 따끔따끔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게 시선이 느껴졌다. 허벅지가 화끈거릴 정도의 시선이다.


자신의 뒤에는 현재 쵸로마츠 형뿐인데 정말 이상하다. 쥬시마츠는 곤란하다.

 

드륵,

 

" 아, 이치마츠 형아! "
" 쥬시마츠. 뭐해? 같이 고양이 보러 가지 않을래. "
" 응! 좋슴다. 헛스루 헛스루 맛스루 맛스루! "

 

때마침 들어온 이치마츠 형이 반가워 쥬시마츠는 턱이 아플 정도로 크게 웃었다. 나가면서 힐긋 쵸로마츠 쪽을 보자 그는 그저 책을 읽고 있을 뿐이었다.


역시. 그건 기분 탓이었나보다.

 

 

 

미묘한 접촉은 그 뒤 몇 번이나 있었다.
예를 들어 자연스럽게 뻗은 것 같은 쵸로마츠의 손이 다리를 스친다든지. 다 같이 샤워를 할 때 쥬시마츠의 등에 쵸로마츠의 손이 잠시 훑고 지나

가는 그러한 것. 그런 접촉이 수없이 이루어졌다.

 

어느 날.


쥬시마츠는 알 수 없는 간지러움에 잠에서 깨었다. 비몽사몽한 정신에 쥬시마츠는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까만 천장이 남색으로 보일 때쯤

쥬시마츠는 번쩍하고 정신이 또렷해졌다. 자신의 잠옷 상의가 올라가 배가 서늘했다. 하지만 그 보다 상의 안에 들어와 자신의 가슴을 간지럽히는 손

이 있었다.

 

" 읏. "

 

쥬시마츠는 한참 천장을 바라보다 손가락이 가슴을 할퀴자 작은 비명을 질렀다. 자신의 옆에 누워 자는 사람은 쵸로마츠 형뿐이다. 쥬시마츠는 힘겹

게 눈을 굴려 옆을 보았다. 하지만 쵸로마츠는 자고 있는 듯 눈을 감고 있었다. 형이 자신을 놀리는 것인가 한참을 보았지만 쵸로마츠의 숨소리는 고

르기만 했다. 그 뒤로 손은 가슴에 놓인 채 가만히 있었기에 쥬시마츠는 형이 잠결에 손을 넣었다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가슴 위에 놓은 쵸로마츠의 손은 고의인 듯. 우연인 듯. 움찔거리며 쥬시마츠의 젖꼭지를 간지럽힌다.

 

" 쵸, 쵸로마츠 형... "

 

쥬시마츠는 더 참을 수 없어 작게 쵸로마츠를 불렀지만 쵸로마츠는 미동 조차 없었다. 깔짝깔짝 쵸로마츠의 가는 손가락이 자신의 꼭지를 긁을 때마

다 쥬시마츠는 옆구리를 찔린 듯 움찔거렸다. 결국, 쥬시마츠는 흥분한 몸에 당황하며 조심히 화장실로 갔다.

 

" 흐? 아. "

 

자위에 익숙하지 않은 쥬시마츠는 몇 번이고 헛손질을 했다.

 

" 쥬시마츠. 뭐해? "

 

쥬시마츠는 갑자기 들리는 쵸로마츠의 목소리에 벼락을 맞은 듯 놀랐다. 급하게 들어오는 바람에 채 잠그지 못한 문을 열고 쵸로마츠가 들어온 것이

다. 쵸로마츠는 눈을 가늘게 뜨고 쥬시마츠를 쳐다보고 있었다.

 

" 에, 그... 그냥... "
" 흠. 나 급한데. "
" 어, 어. 형아 미안... "

 

쥬시마츠는 앞을 본채 이도 저도 못 하고 굳은 듯이 서 있었다. 이 행위를 계속 이어가야 할지 아니면 바지를 올리고 쵸로마츠에게 자리를 비켜줘야

할지를 몰라 쥬시마츠는 우왕자왕 했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쵸로마츠가 자신의 분신을 잡았다.

 

" 으앗? 쵸로마츠 형. 손, 소온. "
" 가만있어. "

 

쵸로마츠는 쥬시마츠의 어깨에 턱을 얹고 손을 움직였다.

 

" 으, 으아. 쵸로맛, 츠으 형. 아 손 놔 줘! "
" 앞이나 봐. 쥬시마츠. "

 

쥬시마츠는 속절없이 신음만 흘렸다. 쵸로마츠는 한 손으로는 쥬시마츠의 분신을 한 손은 상의에 집어넣어 쥬시마츠의 가슴을 만졌다. 아까 자극 당

한 가슴은 알 수없는 찌릿함을 크게 가져왔다.

 

" 으, 아! "

 

쥬시마츠는 결국 형의 손에 절정을 맞이했다. 수치스러운지. 만족스러운지. 알 수없는 쥬시마츠의 얼굴은 붉었다. 항상 웃던 입매도 당황으로 일그러

졌다.

 

" 아, 손 더러워 졌네. "
" ! 쵸, 쵸로마츠 형. 미, 안... "
" 됐어. 볼 일 다 봤으면 나가. "
" 으, 응. "

 

쥬시마츠는 급하게 바지를 입고 뒤 돌아 나가려고 했다. 기묘한 열기가 느껴지는 화장실의 분위기가 쥬시마츠를 억눌렀다.

 

" 쥬시마츠. "

 

나가려던 쥬시마츠는 자신을 부르는 쵸로마츠를 차마 쳐다보지 못 하고 그저 응. 이라고 대답했다.

 

" 자기전에 손 씻고 자. "
" 응... 응! "

 

휴... 쥬시마츠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맹한 쥬시마츠도 안다.

' 쵸로마츠 형은 뭔가 다르다. ' 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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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고백에 쥬시마츠는 결국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소매로 입가를 가린 채 빙긋 웃을 뿐이었다.

카라마츠는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쥬시마츠가 자신을 싫다고 대답한 적은 없으니까.
쥬시마츠는 자신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저 침묵할 뿐이다. 지금처럼.

 

" 쥬시마츠. "
" 아이아이! "
" 키스해도 되겠는가? "
" 어, 어? "

 

다른 형제들이 모두 외출을 한 날이면 카라마츠는 밖을 나가지 않고 쥬시마츠를 붙잡았다. 난처한 얼굴의 쥬시마츠는 항상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지금처럼.

 

카라마츠는 굳은 쥬시마츠 곁으로 다가가 그를 살짝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눈을 크게 뜬 자신의 동생은 귀엽다.

 

쵹-

 

그 이름처럼. 작은 부리 같은 동생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뗀 뒤 카라마츠는 다시 이번에는 깊이 입을 맞추었다. 눈을감지 않은 쥬시마츠를 위해 카라마츠는 손 수 동생의 눈을 가려주었다. 손 밑에서 파드득 파드득 느껴지는 동생의 속눈썹을 느끼며 카라마츠는 더욱 더 깊이 혀를 집어넣었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채우듯이.

 

귓가에 젖은 소리가 들리고 숨을 쉬지 않는 동생의 숨이 한계에 다다를 때 즈음이면 카라마츠는 입을 떼고 쥬시마츠를 빤히 바라보았다. 붉은 볼. 귀. 목. 입술...

 

예쁘다. 자신의 쥬시마츠는. 카라마츠는 쥬시마츠를 끌어안았다.

 

" 쥬시마츠. 사랑해. 너도 날 사랑하지? "

 

언제나와 같은 질문. 하지만 자신의 동생은 언제나 침묵한다. 지금처럼.

 

" ... "
" 사랑해. 쥬시마츠. 네가 날 미워하면, 난 살 수가없어. 사랑해. 사랑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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